부마민주항쟁 해병대 부산대 사진 사망자

2019. 10. 16. 10:35카테고리 없음

지난 2019년 9월 11일 정광민(61) 10·16 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이 부산대 자연과학관(옛 상대) 근처 화단에 세워진 항쟁 표지석을 올려보며 말했답니다. 자연과학관은 40년 전인 1979년 10월16일 부마민주항쟁의 불길이 시작됐던 곳이랍니다. 정 이사장은 부마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랍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이른바 ‘운동권’과는 관계가 전혀 없던 평범한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됐습니다. 민주주의 회복과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퇴진을 바라는 이들이 지핀 불씨는 부산 시민을 자극해 민중항쟁으로 커졌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한 ‘잊혀진’ 항쟁으로 남아있습니다.

항쟁의 시작은 10월15일이었는데 당시 부산대 공대 3학년 이진걸씨 등은 유신독재 정권 퇴진을 담은 ‘민주선언문’ 450여장을 대학 곳곳에 뿌렸답니다. 다음날 정 이사장(당시 경제학과 2학년)은 민주선언문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학내 시위’를 하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정부는 당시  새벽 0시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답니다. 단체활동 금지, 영장 없는 체포 등을 알리는 계엄 포고문이 발표됐는데 해병 7연대와 3공수 특전여단도 투입됐습니다. 계엄군은 부산의 대학들과 관공서 등에 탱크와 장갑차를 배치했는데 군인을 태운 군 트럭이 부산대와 동아대를 오가며 순찰에 나섰답니다.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등 일부 대학에서 학생들이 시위 등을 벌였지만 곧바로 군과 경찰에 진압됐답니다. 시민들도 도심 곳곳에서 작은 규모로 시위에 나섰지만 군과 경찰에 강제 해산됐습니다. 옛 시청 앞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도 진압됐다. 서면교차로에선 시민 1만5000여명이 ‘유신독재 타도’를 외치며 태화백화점(현 쥬디스태화)으로 행진해 해병대와 대치하다 밤 10시께 해산했답니다. 19일에도 남포동 부영극장 앞에 시민 400여명이 모여 군과 경찰에 야유를 보내다가 3공수특전여단 기동타격대에 진압됐습니다.

정부는 16일부터 19일까지 부산에서 대대적인 유신독재철폐 시위가 잇따르자 총을 든 군을 앞세워 강경 진압했답니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위원회)의 진상조사보고서 초안을 보면, 79년 당시 부산의 전체 검거 인원은 1058명이랍니다. 시민 661명, 학생 397명으로 나타납니다. 학생들이 불씨를 지폈고 시민들이 부채질과 기름을 끼얹으며 큰 불로 키웠던 것입니다.